성경이 기록된 것은 3500년 전부터이고 성경에서 언급한 인간의 출현은 5000년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동굴 벽화와 인류의 화석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증거들이 남아있다.
최초의 인간이라고 하는 아담과 하와 이전에도 사람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그 외의 사람들의 창조와 진화에 대한 미완의 기록인 창세기 1장 부분은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창조과학회의 접근 방법은 과학적이지도 신학적이지 않다.
창조와 진화와 인간의 출현은 신비에 쌓인 부분이다. 다만 그냥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의견 또한 별로 좋은 답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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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까지 진화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계보도
400만년에서 200만년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부터 나왔다고 한다.
칼륨-아르곤 연대측정은 방사성 원소인 칼륨-40번과 붕괴 산물인 아르곤-40번을 이용한 연대 측정법으로 1960년에 개발됐다. 칼륨은 자연계에서 칼륨-39번, 칼륨-40번, 칼륨-41번으로 세 종류의 질량을 갖는 동위원소 상태로 지구에 존재하고 있다. 숫자가 클수록 무거운 원소이다. 칼륨-39번, 칼륨-41번은 자연계에서 안정한 상태로 존재한다. 반면 칼륨-40번은 불안정 동위원소로서 방사능 붕괴를 통해 안정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 칼륨-40번은 반감기가 12억 5000만 년으로 매우 길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암이나 현무암의 연대측정에 사용된다.
칼륨-40번이 연쇄적으로 붕괴를 하면 딸원소인 칼슘(Ca)-40번과 아르곤-40번을 만든다. 칼슘-40번은 자연계에 흔히 존재하기 때문에 방사능 붕괴로 생긴 것인지 원래 존재하던 것인지 알기 어려워 연대측정에는 아르곤-40번을 사용하고 있다.
용암처럼 화산암이 용해된 상태에서는 방사능 붕괴를 통해 생성된 아르곤-40번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간다. 아르곤은 비활성 기체이기 때문에 다른 원소와 화학적 반응이 없고 용암에서 쉽게 방출된다. 용암이 식어 암석이 생성되면, 그 이후에 붕괴된 아르곤-40번은 암석 내에 갇히기 시작한다. 이렇게 갇힌 아르곤-40번의 양과 칼륨-40번의 양을 비교해 암석의 연령을 결정한다.
암석이 식은 시점에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즉 암석 내 칼륨의 붕괴 횟수가 많을수록 아르곤-40번의 양은 많고, 칼륨-40번은 적다. 한편, 칼륨-아르곤 연대측정은 동일한 시료 2개를 가지고 각각 칼륨-40번과 아르곤-40번의 양을 측정한다.
고체인 칼륨-40은 원자흡수분광광도계나 화염광도계를 사용해 측정하며, 기체인 아르곤-40은 용광로에서 시료를 가열하여 발산된 양을 질량분석기를 통해 측정한다. 칼륨-아르곤 연대측정법은 동일한 시료가 2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두 시료가 이질적인 경우 오차가 커지는 문제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아르곤-아르곤 연대측정법이 개발되었다.
아르곤-아르곤 연대측정법은 칼륨-40번과 아르곤-40번의 비율을 사용하기 때문에 칼륨-아르곤 측정법과 근간은 같다.
다만, 칼륨-40번을 직접 측정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든 아르곤-39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측정한다. 때문에 한 개의 시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료를 원자로에 넣고 중성자를 조사하면 칼륨-39번은 아르곤-39번으로 변한다. 이때 아르곤-39번의 양을 측정하면 칼륨-39번의 양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계에서 칼륨-39번은 92.23%, 칼륨-40번은 6.73%의 비율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존재비와 칼륨-39번의 측정량을 토대로 칼륨-40번의 양을 알아낼 수 있다. 아르곤-아르곤 연대측정법은 하나의 시료만 사용할 뿐만 아니라 현재에 더 가까운 시기의 시료를 높은 정밀도로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루지야에서 발견된 초기 플레이스토세 인류 두개골 화석의 연대측정에는 화석이 발견된 퇴적층의 기저를 이루는 현무암 시료가 사용되었다. 이 현무암의 연령을 칼륨-아르곤, 아르곤-아르곤 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약 180~2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발견된 초기 호모에렉투스로 추정되는 인골 화석도 연대 측정 결과 180~19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아르곤 연대측정 결과들은 다른 과학적 방법에 의해 검증되고, 다양한 고고학적 발견들과 함께 해석되었다. 그 결과 초기 인류가 150만 년 전에 이미 아프리카를 벗어나 북쪽과 동쪽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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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
현생 인류에 가장 가까운 화석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은 약 4만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2만4천 년 전까지도 생존했던 것으로 여겨져 왔다. 벨기에 스피 동굴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 대한 탄소-14 동위원소를 이용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서 그렇게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대 측정이 시료가 오염돼 빚어진 잘못된 결과라는 주장이 나왔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의 티보 드비에스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스피 동굴의 네안데르탈 화석을 더 정교한 방법으로 연대측정을 진행한 결과, 약 4만4천200~4만6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고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를 통해 발표했다. PNAS와 AFP통신에 따르면 연구팀은 고고학에서 황금률이 돼온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은 똑같이 이용했으나, 시료를 뼈의 콜라겐 부분에서 채집하는 대신 콜라겐을 구성하는 주요 아미노산인 하이드록시프롤린(Hydroxyproline)을 추출해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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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연대측정법
1951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화학과 윌러드 프랭크 리비 교수는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BC 168년에서부터 AD 233년 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사용한 연대측정법은 바로 자신이 1946년에 개발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었다. 고고학을 비롯해 지질학, 지구물리학 등에서 거의 필수적인 연대측정법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 측정법을 개발한 공로로 그는 196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화학에서 단 하나의 발견으로 인간이 연구하는 많은 분야에 그처럼 큰 파급효과를 준 적은 거의 없었다. 단 하나의 발견이 이만큼 공공의 이익을 널리 초래한 적은 거의 없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세 가지 유형의 탄소를 함유하고 있다. 질량수가 12인 C-12가 98.9%, 질량수 13인 C-13이 1.1%, 그리고 나머지는 질량수 14인 C-14다. C-14의 비율을 표시하지 않은 것은 그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C-12와 C-13이 모두 합쳐 총 1조 개가 있어야 C-14가 겨우 한 개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비율은 항상 일정하다.
모든 동식물, 즉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는 광합성이나 호흡 또는 먹이사슬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유형의 탄소 비율 역시 항상 일정하다. 그런데 생물체가 죽는 순간부터 이 비율은 깨지기 시작한다. 비방사성인 C-12와 C-13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방사성 탄소인 C-14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정한 속도로 붕괴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기체가 살아 있을 때 C-14가 100개 있었다면 죽은 지 5730년이 지난 후에는 50개로 되고, 다시 5730년이 흐른 뒤에는 그 절반인 25개가 된다. C-14가 붕괴되는 속도 역시 항상 일정하므로, 유기체의 유물에 남아 있는 C-14 대 C-12, C-13의 비율을 정확히 측정하면 그 유기체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있다.
1933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윌러드 리비는 1941년부터 맨해튼 계획에도 참여했다. 그의 임무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우라늄 동위원소의 분리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리비는 그처럼 방사능 물질들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에 C-14의 정확한 측정에 성공했다. 이를 위해 그는 8인치 두께의 납으로 된 가이거 계수관(방사능 측정기)을 제작하기도 했다.
C-14 탄소연대측정법은 나무나 석탄, 천, 뼈, 조개껍질 등 일단 한 번 살아 있었던 물질이라면 무엇이든 그 연대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그는 이 정확한 방법으로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견된 숯과 나무를 측정해 그 무덤들이 언제 건축되었는지를 밝혔다.
또한 북유럽과 북미의 마지막 빙하시대가 1만1000년 전에 동시에 있었고 상당히 넓게 퍼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프랑스 남쪽 지방에서 빙하시대 도래 이전 혈거인들의 유물이 1만500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하지만 그의 탄소연대측정법에도 단점이 있었다. C-14의 반감기는 5730년이므로 10번의 반감기가 지날 경우 잔량이 0.1% 미만으로 떨어져서 측정 시료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처음 개발 당시 탄소연대측정법은 약 6만년까지의 연대만 측정할 수 있었다.
또한 C-14 탄소연대측정법은 1회 측정에 수 그램의 탄소 시료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문화재의 경우 대부분 매우 귀중한데, 연대 측정을 위해 시료를 그만큼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가속기질량분석기는 그 같은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했다. 가속기질량분석기는 시료 속의 탄소 원자를 이온화시킨 후 입자가속기로 가속해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한다. 따라서 불과 0.001그램의 탄소 시료로도 정확한 연대측정을 할 수 있어 귀중한 문화재에서 떼어내야 할 시료 역시 그만큼 부담이 적어졌다. 또한 오차를 보정하는 다양한 기법이 발전함으로써 약 6만년이라는 한도를 넘어 매우 오래 전의 연대까지 밝힐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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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리 유적의 토탄층 연대측정 결과는 층위상 안정적이다. 가장 오래된 시기층인 밑부분 토탄층은 1만6890년전이고 그 위부터 1만6340년전~1만4090년전~1만3750년전~1만2890년전~9510년전~8800년전 등의 순서이다. 볍씨가 가장 많이 나온 2토탄층의 연대는 1만2500년전~1만4820년전이었다. 맨밑부터 위까지 시기가 차근차근 올라간다는 것은 지층이 뒤집어지지 않았다는 의미한다. 즉 현대에 제작된 비닐이 1만5000년전의 토탄층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볍씨’가 1만5000년전에 쌓인 토탄층에 혼입될 수 없다.
학계 일각에서는 그래도 확실한 것이 좋으니 토탄층에 박힌채 출토된 ‘고대볍씨’ 그 자체의 연대측정이 필요하다고 권유했다. 이에따라 조사단을 이끈 당시 이융조 충북대 교수(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는 ‘토탄에 박힌 볍씨’를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AMS연구실에 보냈다. 그 결과 1만2550년전(토탄)과 1만2520년전(볍씨)이라는 연대가 나왔다. 이것은 서울대 AMS 연구실 측정결과(토탄 1만2900년전, 유사벼 1만2500년전)와 완전히 일치했다. 이융조 교수는 “미국의 지오크론 연구소와 애리조나대와 서울대 AMS 연구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외4개 연구기관에서 흙과 볍씨, 토탄 등을 시료로 해서 교차검증해보니 동일한 결과를 얻어냈다”고 밝혔다. 이는 토탄 퇴적 층위가 매우 안정적이며, 볍씨들이 바로 그 원위치에서 출토되었음을 일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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