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6

하늘 가는 밝은 길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라는 찬송은 장래식에서 많이 듣는 찬송가이다. 1. 구슬픈 곡조가 장례식에 어울린다고 한다. 2. 가사 내용에 하늘 나라 입성에 대한 부분을 노래하고 있어 방금 죽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 앞에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 가사를 지은 윌리엄 더글러스는 스코틀랜드의 귀족인 로버트 로리의 딸 안나 로리를 사랑했지만, 로버트 로리는 윌리엄과 안나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하나는 안나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었고(대략 10살 터울), 다른 하나는 윌리엄의 성격이 너무 거칠었다는 것이었으며, 마지막 하나(아마도 결정적인 이유)는 윌리엄이 재커바이트(제임스 2세 지지자)였다는 것이었다. 이 곡은 전형적인 애가(愛歌)이다. 각 절의 끝 무렵은 극단적인 표현을 씀으로써 의..

찬송가 2024.08.16

친일파 찬송가

찬송가에서 빼야 하는 찬송 한국교회는 친일파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를 지나 지금의 시대에는 청산해야 한다.  -------------------------------------------------------------- 김활란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중략)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잔잔한 바다 잔잔한 바다."  친일행적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김활란은 조선인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데 적극 나섰다. 김활란은 야마기 가쓰란(天城活蘭)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1941년 12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찬송가 2022.02.27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프렌티스 여사는 1818년 10월 26일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스물일곱에 죠지 루이스 프렌티스 목사와 결혼했는데요. 워낙 병약했기 때문에 침상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죠. 하지만 문재가 뛰어나서 틈틈이 시를 써서 발표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856년은 프렌티스 여사가 결혼한 지 11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해에 유행했던 무서운 전염병은 프렌티스 여사의 사랑하는 두 자녀를 순간에 잃게 했죠. 프렌티스 여사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남편 프렌티스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오랫동안 우리가 설교를 통해 선지자들이 믿음으로 살라고 가르쳤던 바를 실생활에서..

찬송가 2022.02.27

주 안에 있는 나에게 (455)

이 찬송 (455장)의 작사자인 히윗 여사는 어떤 부랑아에게 복음을 증거 하다가 도리어 봉변을 당하여 오랜 기간 동안 병상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로 말미암아 히윗여사는 심각한 신앙의 도전을 받기의 이르렀다. 우리가 입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이야기 하기는 쉬우나 그 희생이 직접 내게 요구 될 때에는 실로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히윗 여사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와졌을 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병실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찬송을 흥얼거리며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히윗여사는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서 흥얼 거려요 라며 버럭 역정을 내었다 그 때 청소부는 “나에게 닥친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

찬송가 2022.02.27

내 평생에 가는 길 (413, 470)

호레이쇼 스패포드(H. G. Spafford)는 1860년대에 시카고의 성공한 법률회사 사장이였을 뿐 아니라 린드대학교와 시카고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요, 노스웨스트 장로교신학교 이사 및 운영위원이었습니다. 또한 그와 그의 아내 안나 스패포드는 세계적 전도자인 무디와 절친한 친구로 무디 교회의 회계집사와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던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43세 되던 1871년에 시카고 북쪽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그 해 대화재로 전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재난 직전에는 급성 전염성 피부질환으로 첫째 아들도 잃었습니다. 엄청난 시련 앞에서 스패포드와 그의 가족은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873년, 그는 아내와 네 딸과 영국 등 유럽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습니다. 때마침 유럽에서 복음..

찬송가 202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