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페니실린 이야기

malssum 2024. 10. 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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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는 몸에 작은 상처가 나거나 세균에 감염된 후 죽는 일이 흔했다. 1914년 일어난 세계 1차 대전은 항생제가 발명되기 전에 일어난 전쟁으로 군인 1천만명이 죽었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9천만명의 사람이 죽었다. 1939년 일어난 2차 세계 대전의 후반부에 항생제가 대량생산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1929년 플레밍은 영국 세인트메리병원에서 곰팡이를 배양해 멸균능력을 지닌 물질을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침 플레밍의 연구실 바로 아래층에는 곰팡이로 알레르기 백신을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었다. 이 실험실에서 사용한 곰팡이 중 하나가 운 좋게 위층으로 날아왔다. ‘푸른곰팡이’로 잘 알려진 ‘페니실리움 노타툼’은 연구실의 수많은 곳 중에서도 하필 포도상구균이 배양되던 플레밍의 배양용기에 가서 앉았다. 곰팡이로 오염된 부분에만 포도상구균이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플레밍이 발견하였다. 추가 연구를 통해 플레밍은 이 푸른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을 분리해내기에 이른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이 포도상구균뿐 아니라 연쇄상구균, 뇌막염균, 임질균, 디프테리아균에 항균 효과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임상실험은 성공하지 못한다. 

 

10년 뒤 하워드 플로리와 언스트 카인이라는 두 과학자가 1940년 5월 동물실험에서 페니실린의 효과를 입증했고, 이듬해 8월엔 포도상구균에 감염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해, 그해 8월 논문으로 발표했다. 1943년에는 페니실린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내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다.

 

1940년 전에도 외과술은 발달했지만 항생제가 없었기에 생존율은 높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 후 감염등의 문제로 과감한 외과 수술은 불가능하였다. 항생제의 발명은 외과의사들에게 과감한 외과 수술을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항생제의 남용은 새로운 항생제 발명 속도보가 세균의 변형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먹는 것을 찾고 약을 찾아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지 생각할 수록 신비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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