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가솔린 엔진의 발명

malssum 2024. 11. 1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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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행정 가스 엔진: 엔티엔트 르노와르 1859년 발명, 점화플러그의 발명
 

 
벨기에의 에티엔트 르노와르는 1859년 처음으로 2행정 내연기관을 양산화했다. 석유를  동력으로 활용한 역사적 사건이다.

에티엔 르누아르(Étienne Lenoir, 1822년 1월 12일 – 1900년 8월 4일)는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발명가이다. 1860년 최초로 실용적인 내연 기관을 만들었다. 이 기관은 실린더가 하나였으며, 증기 기관과 비슷하지만 가로등을 켜는 가스를 연료로 사용했다. 또한 르누아르의 기관은 축전지 점화장치가 있어 증기 기관보다 빠르고 쉽게 시동되었으며, 사용하기에도 편리했다.

1859년까지 Lenoir는 전기에 대한 실험을 통해 Ruhmkorff의 "점프 스파크" 점화 시스템에 의해 점화된 석탄 가스와 공기의 혼합물을 연소하는 최초의 내연 기관을 개발했으며 1860년에 특허를 받았습니다. 엔진은 증기 기관이었습니다. 기체 연료를 태우도록 변환되어 양방향으로 밀립니다. 연료 혼합물은 점화 전에 압축되지 않았으며(파리를 밝히기 위해 조명 가스 사용을 개발한 Philippe LeBon이 1801년에 발명한 시스템), 엔진은 조용했지만 실린더의 양쪽 끝에 파워 스트로크가 있어 비효율적이었습니다. 1863년에 히포모빌은 수소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1기통 내연 기관으로 파리에서 조인빌 르 포인트까지 시운전을 했습니다. 최고 속도는 약 9km였습니다. 약 3시간 만에 도달했습니다.
 
르누아르 Petiene et Cie(Petiene & Company)의 엔지니어였으며, 1859년 자본금 200만 프랑과 자본금으로 파리에 Corporation Lenoir-Gautier et Cie 엔진 파리와 Société des Moteurs Lenoir의 회사를 설립하는 데 그를 지원했습니다. Rue de la Roquette에 있는 공장에서 엔진을 개발하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 건설된 삼륜 마차. 그것은 합리적으로 잘 작동했지만 엔진은 연료 비효율적이고 매우 시끄럽고 과열되는 경향이 있었고 충분한 냉각수가 적용되지 않으면 고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cientfic American은 1860년 9월에 파리 신문 Cosmos가 증기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1865년까지 파리에서만 143대가 판매되었고 런던의 Reading Gas Works에서 Lenoir Gas Engines의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Lenoir는 1859년에 엔진 작업을 완료했으며 1860년 1월 23일 20명의 손님을 위해 그랜드 공개했습니다. 연설에서 그는 "효과가 있다면 휘발유, 휘발유, 타르 또는 모든 수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정한 수준으로 기화기 가열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명 가스 밸브를 켜고 플라이휠을 밀자 엔진이 살아났습니다. 

1860년 Lenoir는 Conservatoire National des Arts et Metiers, no. N.43624로 부터 특허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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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오토(독일어: Nikolaus August Otto, 1832년 6월 10일~1891년 1월 26일)는 독일의 기계 기술자이다. 
 
1864년 일종의 4 사이클 가스 기관을 만들었으며, 1867년 파리 박람회에 출품하여 인기를 끌었다. 1872년 독일 가스 기관 제작 회사를 세우고 다임러의 협력을 얻어 '오토 기관'이라는 실용적인 4사이클 가스 기관을 만들고, 1877년 특허를 받았다. 이로써 내연 기관 발달의 기초를 쌓았다.
 
1885년 독일의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어내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휘발유 자동차를 만든 카를 벤츠도 최초의 자동차 발명가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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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엔진의 토대는 독일의 기술자 니콜라우스 오토가 만들었다.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행정 사이클은 프랑스의 기술자 알퐁스보 드 로샤가 고안해냈지만, 이를 기반으로 한 실제 엔진의 완성은 1876년 니콜라우스 오토가 최초였다.

니콜라우스 오토는 1832년 독일 헤쎈 주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토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졌다. 학교를 중퇴하고 독일, 벨기에, 프랑스 국경을 넘나들며 생필품을 팔고 다녔는데, 외판원 생활 중 엔진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4행정 엔진 개발에 뛰어들게 된다.

오토는 1872년 오이겐 랑엔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독일 가스발동기 회사(Gasmotoren-Fabrik DeutzAG)를 설립한다. 이 회사는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벤츠의 시초를 만든 고트리브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가 이곳에서 기술감독관으로 근무했었다.

오토는 다임러, 마이바흐와 함께 최초의 엔진을 만들어내고, 1877년에는 4행정기관 특허를 얻는다. 개발자 이름을 따 오토엔진이라 불렸던 이 내연기관은 10년간 3만대 이상이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초의 엔진은 가솔린 엔진이 아니었다. 가스를 연료로 하는 가스엔진이었다. 초기 내연기관은 액체를 연료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점화용 보조 버너가 필요했다. 오토는 1884년 이 점화를 간편화하기 위해 전기점화 방식을 개발했고, 바로 이 전기점화 방식 덕분에 액화연료를 사용하는 엔진 개발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가솔린 엔진을 개발하고 상용화 시킨 인물은 바로 고트리브 다임러다. 오토는 가스 엔진만을 고집했다고 전해진다. 반대로 다임러는 가솔린을 연료로 삼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 둘은 마찰을 빚었다. 이후 다임러는 오토의 회사를 떠나 1885년 가솔린 기화기를 완성한다.

오토는 일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자동차 관련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후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으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오토는 1891년 쾰른에서 생을 마감했다.

출처 : 시사저널e(https://www.sisajourn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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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틀리프 다임러는 슈투트가르트 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철로 기관차를 제작하는 롤레 운트 슈빌케에서 일하였는데 능력을 인정받아 22살의 나이로 감독을 맡았다. 이후 슈투트가르트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기술을 배운 후 여러 공장들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이 시절 만난 사람이 바로 평생의 파트너 빌헬름 마이바흐이다. 
 
1872년에는 오토가 설립한 회사 도츠에 기술이사로 들어갔으며, 들어가면서 빌헬름 마이바흐를 수석 디자이너로 데려갔다. 그러나 오토와 갈등을 빚고 회사를 나와 마이바흐와 함께 워크샵을 만들어 일하였다. 이때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로 여겨지는 라이트바겐(Reitwagen)을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4륜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 후 1890년, 마이바흐와 함께 다임러 모토렌 게젤샤프트(Daimler-Motoren-Gesellschaft, 약칭 DMG)를 설립한다.
 
하지만 DMG의 이사진과 운영 방향에 대한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을 빚었으며 퇴사를 했다가 복직하기도 하는 등 여러 일을 겪기도 했다. 1900년 66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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