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에 율법은 1500년이나 된 아주 낡은 문구들이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야 함에도 문자로 기록한 후 그것을 문자대로 지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성하려고 왔다고 하셨는데 그 율법을 완성하시려는 예수님의 율법 해석이 자신들의 문자적해석을 뛰어넘는 신선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죄성을 건드리고 이기심을 건드리고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을 느꼈다.
고르반이라는 율법을 만들어 부모사랑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고 부모 사후에 다시 무르는 제도를 만드는 사악함, 결혼하고 이혼하고 또 결혼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표현하신 예수님을 미워함 하나님의 형상인 형제를 욕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뻔뻔함 등등 신약 성경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인에게 국한된 자신들의 낡은 가르침을 뛰어 넘어 이방인과 로마사람에게도 전파될 것 같다는 우려, 그렇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종교권력이 흔들리리라는 우려로 예수님을 죽이는 모의를 시작한다.
흑인인 에디오피아 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예루살렘에 왔지만 흑인이어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빌립을 에디오피아 내시의 마차에 가까이 가게하시고 이사야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을 알려주고 물에서 세례를 베풀어 예수님의 복음이 아프리카로 퍼져나가게 만드시는 것이 복음이 유대인의 율법을 뛰어넘는 예이다.
현대 교회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이 나타 나지 않는 것이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과 같은 자세를 현대 교회가 취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이 신분이나 지역이나 인종을 차별하지는 않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신약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드론 계곡 겟세마네 올리브 동산 (0) | 2023.08.01 |
---|---|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다 (0) | 2023.07.24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0) | 2023.06.30 |
가룟 유다는 왜 목을 매고 자살했을까? (0) | 2023.06.22 |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 vs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쓰신 것은 무엇이었을까? (0) | 2023.06.17 |